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누굴까?’
염소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체 누굴까?
염소는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헉헉거리는 숨소리.
설마 늑대? 이런 좁은 오두막 안에서 늑대라도 만난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밥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리고
‘코옹, 코옹, 코옹, 코옹’
한 걸음 한 걸음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마룻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발굽 소리야. 뭐야, 그렇다면 염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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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점심은 어떠세요?”
염소가 서둘러 제안을 해왔다.
“좋습니다. 폭풍우가 친 다음 날은 특히 날씨가 좋다고 하니까요.”
“장소는 어디로 하죠?”
“음, 일단 이 오두막 앞은 어때요?”
늑대가 답하자 염소가 바로 소리쳤다.
“좋아요! 하지만 저희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데…….”
“그럼 만약을 위해서 제가 ‘폭풍우 치는 밤에 만난 상대입니다.’라고 말을 하죠.”
“후후, ‘폭풍우 치는 밤에’만으로도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염소가 또 높은 소리로 웃었다. 방울이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럼 저희들 암호는 ‘폭풍우 치는 밤에’인 셈이군요.”
늑대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약속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지…….
“그럼 내일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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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늑대는 당신네 염소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나쁜 존재군요.”
가브는 넘칠 것만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을 뱉었다.
“어차피 우리는 눈도 찢어지고, 입은 상스럽고 코는 못생겼으니까요.”
“무슨 그런 말을…….”
“아무리 이렇게 만난다고 한들 결국 우리는 염소와 늑대니까요.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잖아요.”
가브는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사실이 자신에게 들이닥치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커다란 벽이 눈앞에 가로막힌 것처럼 절망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메이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둘의 관계를 망가뜨리긴 싫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비밀스러운 관계잖아요.”
메이는 앞으로 돌아와서 가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비밀스러운 관계?”
자신도 모르게 가브가 대답했다.
“네에.”
미소를 띠고 끄덕이는 메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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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어쩌죠?”
가브가 배시시 웃는다.
“네, 우리 이제 더 이상 비밀스러운 관계가 아닌 것 같아요.”
메이는 벼랑 위에 죽 늘어서 있는 늑대들을 올려다보았다. 동료 염소들도 늑대들의 눈을 피해 어느 숲 속에선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계속 갈지 아니면 돌아갈지를 결정해야겠어요.”
“저를 잡아먹으면 모든 일이 해결되겠지만요.”
“하하하, 그렇게만 되면 문제는 간단하죠.”
둘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소리를 모아 웃어댔다.
“이렇게 된 이상 가는 데까지 가 볼까요?”
“그런 각오쯤은 이미 하고 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브와 메이는 저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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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가브. 너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어차피 밖이 이렇게 추워서는 염소인 나로서는 더 이상 못 버텨. 그러니까 가브, 내 몫까지 살아.”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가브와 만나서 행복했어. 목숨을 바쳐도 좋을 상대를 만났던 것도 감사해.”
“그렇게 생각해주는 네가 있어서 나야말로 행복해.”
“그러니까 가브는 먹이를 많이 먹고 힘내서 이 산을 넘어가.”
“무슨 말이야? 먹이가 어디 있다고?”
“있잖아, 여기에.”
가브는 흠칫하며 메이를 봤다. 너무나도 뜻밖이라 가브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브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메이는 먹이 따위가 아니야!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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